매일 성경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회복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목 |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 ||||
---|---|---|---|---|---|
작성자 | 관리자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8-02-26 | 조회수 | 1,985 |
파일 | |||||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선교 영웅 ‘찰스 토마스 스터드(Charles Thomas Studd)’의 별명은 ‘브와나 무쿠바’(위대한 하얀 추장)이다. 그는 19세기말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Cambridge)’를 졸업한 한 명석한 청년이었다. 그의 부모는 영국 최상류층 가문으로 자녀로 아들 3형제를 두었다. 그중 막내로 태어난 찰스 스터드는 당시 영국의 국기(國技)라고 할 수 있는 크리켓 국가대표 주장선수로서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으며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언변으로 장차 영국의 정치가로서 장래가 활짝 열려 있었다.
찰스의 아버지 에드워드 스터드는 인도에서 염료를 재배(황마)하는 농장 소유주로 엄청난 돈을 모은 후 영국에 돌아와 경마를 하며 한가한 여생을 보냈다. 그런데 1875년 찰스 스터드가 14살 되던 해 아버지 스터드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 강사 D.L 무디(Moody)의 전도 집회에 참석해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다. 에드워드 스터드는 경마에서 최우수상으로 탄 말을 팔고 경마에서 손을 뗐다. 그후 부친 에드워드 스터드는 교회의 성경 공부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석하면서 가정에 혁명이 일어났다. 저택 거실에 의자와 소파 등을 갖춰 놓고 런던에서 뛰어난 성경선생님들을 모셔와 친척들과 친구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오로지 전념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후 찰스 스터드는 열광적으로 크리켓에 빠져들었다. 대학시절 ‘영국의 가장 위대한 크리켓선수’ 라는 격찬을 받은 스터드는 뛰어난 실력에다 준수한 외모, 쾌활한 성격, 좋은 인상, 친절한 마음으로 대학 내에서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찰스 스터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전 재산을 신앙과 구제를 위해 내어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중국과 인도를 거처 콩고에서 71세의 나이로 소천하기 까지 평생을 신실한 복음의 전도자로 거룩한 삶을 살다 갔다. 찰스 스터드는 50세가 되던 해인 1908년 리버풀에서 그는 ‘식인종은 선교사를 원한다’는 벽보를 보았습니다. 이는 “수십만의 중앙아프리카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 본 일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린 어느 외국인이 붙인 것으로 그는 건강이 썩 좋지 않았지만 기도 후 결심을 하고 콩고에 들어가 18년간 복음을 위해 사역을 하여 아프리카 지역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우리 일터의 영가족 기도공동체에 속한 가정에 찰스 스터드 가문과 같은 신실한 믿음의 자녀가 일어나는 믿음의 명문가정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이 아침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