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회복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목 |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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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8-03-19 | 조회수 | 1,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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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위 본문은 예수님 부활 이후 베드로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남은 평생을 헌신하도록 사명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막 14:30-31)라고 말했으나 그 밤에 주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했던 베드로, 주님의 부활을 보고도 디베랴 호수로 고기 잡으러 떠났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세 번 물으십니다.
‘네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느냐?’ ‘만일 그러하다면 내 양들을 먹이라’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상에 남겨진 주님의 양들을 먹일 것을 명하십니다. 이 명령은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평생의 사명이며 자기의 연약한 믿음으로 주님을 세 번 배반한 일에 대한 회개와 치유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악이 가득한 이 시대의 베드로된 심정으로 세상을 살아갈 사명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왜 선교를 해야 하며 그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선교를 두고 종교의 자유를 들어 믿는 자유와 믿지 않을 자유가 동일함을 말하며 종종 선교 행위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춰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을 대적하는 사단의 교묘한 책략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숲속 어느 곳에 늪지대가 있어 그 늪에 사람이 빠져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이 그 사람을 건져주면 그 사람은 살 것이고 만일 건져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면 그 사람을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늪에서 건져주었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될 것이나 만일 외면하고 지나쳐 버린다면 그 사람의 애처로운 마지막 모습은 당신의 가슴에 평생 죄책감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단의 악함이 공존합니다. 그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지는 그 사람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 이성과 판단은 우리가 선을 행할 때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얻게 됨을 알게 합니다. 크리스천의 선교는 바로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의 소망을 함께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면 결코 선교를 멈출 수 없으며 멈춰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만일 그 사명을 외면한다면 누군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사망의 늪에서 죽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한 죄책감이 평생을 짓누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는 사명자로서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를 향해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그 말씀. 그리고 열 한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는 그 말씀을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로서 평생의 할 일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일터의 영가족 기도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명의 땅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모험을 결단하는 은혜의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